『미쳐야 미친다』
부제목은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미쳐야 미친다'
뭔가에 미친 듯 열중하고 집중하다보면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뜻..
조선 지식인들의 여러 대단한 업적들이
그러한 '미침'으로 인해
업적에 '미쳤다'는 게 주요 요지이다.
독서에 미치고,
글과 그림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연구에 미치고...
한장 한장 읽어가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싶을 정도의 미침이다.
때로는 바보같고 미련하기까지 한 미침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의 밥벌이조차 되지 않아 식구들을 굶주리게 하면서까지
미치는 그 열정이 대단하다 싶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이
'아웃사이더'라고 부를 수도 있고,
'미친놈'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조금은 살 만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뭔가 하나에 마음을 붙이면
그대로 말뚝 박아버리는 스타일인 나는
때때로 뭔가를 이뤄내는 성취감을 얻을 때도 있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도 많다.
반면 때로는 변덕도 심하여 말뚝 박아볼까.. 하다가도
요리조리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던 적 또한 한두번이 아니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잘 극복해내지 못해서,
때로는 요리조리 바꿔버리는 변덕이 심해서
나는 아직까지 뭔가에 미치지 못했나보다.
과연 내가 미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미치도록 집중하고 열중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의 미침으로 인해 나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광기와 열정이 깔려 있다.
-머리말 5-
누구에게나 자신의 시대는 자못 격정적이다.
이 격정 앞에 온몸을 내던져 맞부딪쳐 나가는 사람이 있고,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이 있다.
뼈아픈 시련을 자기 발전의 밑바대로 삼아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사람과,
한때의 득의가 주는 포만감에 젖어 역사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버린 사람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전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머리말 6-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하고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狂氣)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13-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다."
라고 박제가는 힘주어 말한다.
미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이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이다.
이리 재조 저리 재고, 이것저것 따지기만 해서는
전문의 기예, 즉 어느 한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벽이다.
-18-
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붓글씨나 그림, 노래 같은 하찮은 기예도
이렇듯 미쳐야만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미쳐야 할 것인가?
-30-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
홍길주는 <김영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손가락질당하는 세상,
모자란 것들이 작당을 지어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해대는 사회,
그러고는 슬쩍 남의 것을 훔쳐다가 제 것인 양 속이는 세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50-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번 척 보고 다 아는 천재도 있고,
죽도를 애써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바보도 있다.
정말 갸륵한 이는 진전이 없는데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 바보다.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을 뚫기가 어려울 뿐,
한번 뚫리게 되면 크게 뻥 뚫린다.
한 번 보고 안 것은 얼마 못 가 남의 것이 된다.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야 평생 내 것이 된다.
-51-
<김득신>
그는 <백이전>을 1억 1만3천 번 읽은 것으로 이름났다.
이때 1억은 지금의 10만을 가리키니,
실제 그가 읽은 횟수는 11만 3천번이다.
그 자신도 이것을 자부해서 자신의 거처에
'억만재'라는 당호를 내걸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얼마나 머리가 나빴으면 길가다 우연히 들려온
<백이전>의 한 구절을 기억 못했다.
말고삐를 끌던 하인조차 질리게 들어 줄줄 외우던 글을 말이다.
-56-
<김득신>
빚 대신 가난한 집 솥을 뽑아 오는 각박함을 보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 잊어버리기 잘하는 사람이 몇 년 전에 한 벗과의 약속만은
잊지 않고 지켰다.
이런 독실한 품성의 바탕에서
그의 근면한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63-
글의 앞부분에서 황덕길은 김득신의 피나는 노력을 말하면서,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다고 했다.
부족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
단순무식한 노력 앞에는 배겨날 장사가 없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동안 내용이 골수에 박히고 정신이 자라,
안목과 식견이 툭 터지게 된다.
한 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한 번 떠진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다.
-65-
<이덕무>
눈물 없이는 차마 읽을 수 없는 제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그의 독서가
슬며시 미워진다.
누구를 위한 독서요, 무엇을 위한 독서였던가?
제 어미의 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제 누이마저 영양실조로 떠나 보내는 그런 독서를
무엇에다 쓴단 말이냐?
-78-
<이덕무>
하지만 오늘 그가 나를 압도하는 대목은
호한한 독서와 방대한 저작이 결코 아니다.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그의 올곧은 자세가 나는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만년의 별 실속 없는 득의거나,
그 많은 임금의 하사품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알아줄 기약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제 가는 길을 의심치 않았던 그 믿음이 나는 두렵다.
-81-
<서문장>
그는 기이한 짓을 수없이 많이 했다.
가슴속의 분이 쌓여 광질이 되었다.
그는 왜 도끼로 제 머리를 쳤을까?
머리가 없었다면 번뇌도 없을 것이 아닌가.
왜 송곳으로 두 귀를 찔렀을까?
귀가 멀어야만 이 미친 세상의 소음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할 것 아닌가.
-99-
<노긍>
그가 태어나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얻었고,
그가 죽자 우리나라가 한 사람을 잃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07-
누구나 이루지 못한 꿈 몇 가지 지니고 산다.
이루어진다면 이미 꿈이 아니니,
꿈꾸는 자유야 굳이 허물할 일이 아니다.
꼭 가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거처,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
갈 수 없고 이룰 수 없고, 만날 수 없어 꿈은 더 간절하다.
옛사람의 꿈을 살짝 들여다보는 일은
그의 내면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삶의 속도가 조금 달랐을 뿐,
바쁘고 쫓기기는 그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바쁜 삶에 쫓겨 묻어둔 꿈들은 파편처럼 떠돌다 비수처럼 불쑥 박힌다.
-125-
이정은 허균보다 아홉 살 아래에 보잘것없는 화공의 신분이었다.
나이를 잊고 신분을 떠나 사귐을 나누었던 그가,
네가 못 오면 내 옆에서 웃고 떠드는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내라고 부탁할 만큼 각별히 아꼈던 그가,
잘먹고 잘살라며 정승의 귀한 비단을 다 버려놓고 달아났던 그가
이렇게 덧없이 훌쩍 가버리자 참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그림을 중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을 중히 여겼다는 말,
그가 죽자 풍류가 문득 다 스러지고 말았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130-
세상에 허망한 일이 이뿐이겠는가.
뜻 높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다.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서 늘 떵떵거리고 으스댄다.
참으로 아까운 재능을 지닌 화가가
제 재주를 마음껏 피워보지도 못하고
술주정뱅이로 전전하다 세상을 하직하게 만드는 세상,
멀쩡한 선비를 차라리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는게
낫겠다고 내모는 세상,
허균은 이런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135-
<허균>
사람들아, 나의 거처가 누추하다고 말하지 말라.
정말 누추한 것은 더러운 명예를 쫓아다니는 일,
이 한 몸 죽고 나자 이름도 함께 썩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여 세상에 살다간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일,
평생을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손가락질만 받다가 죽는 것이다.
쑥대 지붕 아래에도 우주를 덮을 큰 자유가 있다.
도연명도 무릎을 겨우 들일 만한 좁은 집에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구차한 살림을 살았다.
그러나 보라.
그의 이름은 백대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뭇 사람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대저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137-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만남 앞에서도 길 가던 사람과 소매를 스치듯
그냥 지나쳐버리고는 자꾸 딴 데만 기웃거린다.
물론 모든 만남이 맛난 것은 아니다.
만남이 맛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고장난명이라고, 외손바닥으로는 소리를 짝짝 낼 수가 없다.
-177-
구멍을 꿇기는 힘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지 않는 큰 구멍이 뚤릴 게다.
꼭 막혔다가 뻥 뚫리면 거칠 것이 없겠지.
미욱한 것을 닦고 또 닦으면 마침내 그 광채가 눈부시게 될 것이야.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며,
셋쨰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183-
<정약용>
마마로 죽은 아들이 못내 가슴 아팠던 아버지는,
뒤에 천연두를 치료하는 방법을 정리한
<마과회통>이란 책을 지어 안타까움을 달랬다.
절망을 극복하는 다산다운 방법이었다.
-242-
눈은 자더라도 마음은 자지 말라.
육신의 눈은 감아도 마음의 눈마저 잠들면 안 된다.
잠을 자되 마음은 깨어 있으란 말은,
맨 정신으로 자란 말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저런 근심이 독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고개를 세우고 있다.
여차하여 빈틈을 보이면 단숨에 물어 그 독이 온몸에 퍼지고 말 것이다.
번뇌는 왜 생기는가?
욕심 때문에 생긴다.
내가 남을 이겨야겠고, 더 많이 가져야겠고,
그것도 모자라 통째로 다 가져야겠기에 생긴다.
잠자리가 편치 않고 사나운 것도
모두 이 마음속에 똬리를 튼 독사 때문이다.
음산한 기운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와
내 영혼의 축대를 허물지 않도록
마음의 창을 닦고 또 닦아 깨끗하게 지켜야겠다.
잠들지 말아야겠다.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