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身正心

[스크랩] 大學集註章句序 ---원문및 번역

옥호정 2007. 3. 2. 03:05

 大學集註章句序


 大學之書 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也 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 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 則天必命之以爲億兆之君師 使之治而敎之 以復其性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 而司徒之職典樂之官 所由設也


『大學』의 책은 옛날 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하늘이 사람(生民)을 내림으로부터 이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그 기질(氣質)을 받은 것이 혹 똑같지 못하다. 이 때문에 모두 그 본성의 소유함을 알아 온전히 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聰明)하고 예지(叡智)하여 능히 그 본성을 다한 자가 그 사이에 나옴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시어 억조 만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백성) 本性을 회복하게 하시니, 이는 복희(伏羲) · 신농(神農) · 황제(黃帝)  요(堯) · 순(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칙(極)을 세운 것이요, 사도(司徒)의 직책과 전악(典樂)의 벼슬을 이 때문에 설치한 것이다.


三代之隆 其法寖備 然後王宮國都 以及閭巷莫不有學 人生八歲 則自王公以下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文 及其十有五年 則自天子之元子衆子 以至卿大夫元士之適子 與凡民之俊秀 皆入大學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 此又學校之敎 大小之節所以分也


三代의 융성했을 때에는 그 법이 점점 갖추어졌으니, 그러한 뒤에 왕궁(王宮)과 국도(國都)로부터 여항(閭巷)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이 태어난 지 8세가 되면 왕공(王公)으로부터 이하로 서인(庶人)의 자제(子弟)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들어가서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과 예(禮) · 악(樂) · 사(射) · 어(御) · 서(書) · 수(數)의 글을 가르치고, 15세에 이르면 천자(天子)의 원자(元子) · 중자(衆子)로부터 공(公) · 경(卿) · 대부(大夫) · 원사(元士)의 적자(嫡子)와 모든 백성의 준수(俊秀)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으니, 이는 또한 학교의 가르침에 크고 작은 절차가 나누어진 이유이다.

 

夫以學校之設 其廣如此 敎之之術 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 而其所以爲敎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 不待求之民生日用彛倫之外 是以當世之人 無不學 其學焉者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 職分之所當爲 而各俛焉以盡其力 此古昔盛時 所以治隆於上 俗美於下 而非後世之所能及也


학교의 설치가 그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방법이 그 차례와 節目의 상세함이 또 이와 같되, 그 가르침을 하는 것은 또 모두 인군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 얻은 나머지에 근본하고, 민생이 일상생활하는 彛倫의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배우지 않은 이가 없었고, 배운 자들은 그 성분의 고유한 바와 직분에 당연히 행하여야 할 바를 알아서 각기 힘써 그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옛날 융성할 때에 정치가 위에서 높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 후세에서 능히 따를 바가 아닌 所以이다.

 

及周之衰 賢聖之君不作 學校之政不修 敎化陵夷 風俗頹敗 時則有若孔子之聖 而不得君師之位 以行其政敎 於是獨取先王之法 誦而傳之 而詔後世 若曲禮少儀內則弟子職諸篇 固小學之支流餘裔1)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 以著大學之明法 外有以極其規模之大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三千之徒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 獨得其宗 於是作爲傳義 以發其意 及孟子沒 而其傳泯焉 則其書雖存 而知者鮮矣

周나라의 쇠함과 미쳐 어질고 聖스러운 君主가 나오지 못하고, 학교의 정사가 닦아지지 못하여 교화가 陵夷(침체)되고 풍속이 무너지니, 이때에는 공자 같은 성인이 계셔도 인군과 스승의 지위를 얻어 정사와 가르침은 행할 수 없었다. 이에 홀로(다만) 先王의 법을 취하여, 외워 전하여 후세를 가르치시니, 「典禮」·「少儀」·「內則」·「弟子職」같은 여러 편은 진실로 소학의 支流와 餘裔이며, 이 책은 소학의 성공을 인하여 대학의 밝은 법을 드러내었으니, 밖으로는 그 規模의 큼을 다함이 있고, 안으로는 그 절목의 상세함을 다함이 있다. 삼천 명의 문도가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이가 없건만은 曾氏의 전함이 홀로 그 宗統을 얻었다. 이에 傳義 지어 그 뜻을 발명했었는데, 孟子가 별세함에 미쳐 그 전함이 끊기니, 그 책이 비록 남아 있으나 아는 자가 적었다.

自是以來 俗儒記誦詞章之習 其功倍於小學而無用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 與夫百家衆技之流 所以惑世誣民 充塞仁義者 又紛然雜出乎其間 使其君子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 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 晦盲否塞 反覆沈痼2)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

  이로부터 이래로 俗儒들의 記誦과 詞章의 익힘이 그 공부가 小學보다 배가 되었으나 쓸데가 없었고, 異端의 虛無(老莊), 寂滅(佛法)의 가르침은 그 높음이 大學보다 더하였으나 실제가 없었으며, 기타 權謀術數로서 일체 공명을 이루는 학설과 百家 衆技의 부류들이 세상을 혹하게 하고 백성을 속여 仁義를 막는 자들이 또 紛紛하게 그 사이에 섞여 나와서 君子(위정자)로 하여금 불행하게 대도의 要諦를 얻어 듣지 못하게 하고, 小人(백성)으로 하여금 불행하게 至治의 혜택을 얻어 입지 못하게 하여, 晦盲하고 否塞(비색)하며 反復하고 沈痼하여, 五季의 쇠함에 미쳐 무너지고 혼란함이 지극하였다.


天運循環 無往不復 宋德隆盛 治敎休明 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而有以接乎孟氏之傳 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 旣又爲之次其簡編 發其歸趣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聖經賢傳之指 粲然復明於世 雖以熹之不敏 亦幸私淑而與有聞焉 顧其爲書猶頗放失 是以忘其固陋 采而輯之 間亦竊附己意 補其闕略 以俟後之君子 極知僭踰無所逃罪 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 學者修己治人之方 則未必無小補云


天運이 循環하여,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육이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河南程氏 두 夫子(明道 · 伊川)가 나오시어 孟氏의 전통을 접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처음 이 책을 높이고 믿어 表章하시고, 또 이를 위하여 그 簡編을 차례하여 歸趣를 밝히시니, 그러한 뒤에야 옛날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처던 법과 聖經賢傳의 뜻이 찬란하게 다시 세상에 밝아지니, 비록 나의 不敏함으로로도 또한 다행히 私淑하여 들음에 참여하였노라. 다만 그 책이 아직도 佚失됨이 많았다. 그러므로 固陋함을 잊고, 뽑아 모으며 사이에 또한 나의 의견을 붙여 闕略을 보충하고 후세의 군자를 기다리노니, 참람하고 주제넘어, 그 죄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나, 국가의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과 배우는 자들의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淳熙(남송 광종)己酉(1189)二月甲子 新安朱熹序



1) 支流餘裔 : 支流는 강의 지류이며, 餘裔는 옷 끝의 옷자락으로, 한 部分임을 말한 것이다.


2) 晦盲否塞 反覆沈痼 : 晦는 달이 없는 그믐밤이고, 盲은 눈이 없어 보지 못하는 봉사이며, 否(비)는 숨이 막히는 것이고, 塞은 냇물이 막힘을 이른다. 反覆은 反復과 같은 말로, 자꾸만 되풀이 하여 더욱 심한 것이며, 가라앉아 떠오르니 못하는 것이고, 痼는 병이 더욱 깊어져 치료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모두 道學이 밝지 못하여, 세상이 더욱 어두워지고 혼란에 빠졌음을 뜻한다.


출처 : 大學集註章句序 ---원문및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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