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音樂
그림 그리기
옥호정
2008. 1. 31. 12:29
그리던 나무를 아무래도 지워야겠다
혼자서 멀리 떠나야만
길고
편한 잠 이룰 수 있는 것 알면서
땅에 떨어지기 싫어하는
낙엽이 있다면 어쩌겠냐.
바람은 밤낮으로 거칠게 불어대고
겨울이 되기 전에 땅이 되어야 하는
약속의 시간을 어긴다면 어쩌겠냐.
언제 우리 마음을 완전히 풀어놓고
언제 인연의 수갑을 두 팔에서 풀어놓고
정신없이 밀린 잠을 잘 수 있으랴.
마지막 날의 그림을 그린다.
마무리하던 나무를 지우고 , 그 위에
모든 색깔을 다 지우고,
짧고 간단한 향기를 그린다.
편안하다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나무 옆에 서 있는 향기가 되겠지.
여기 있다고 말할 것도 없고
생각도 없이, 만질 것도 없이
밤낮으로 보고만 있으면 편안하지 않겠냐.
지나간 날들의 많은 영혼이 돌아오면
우리들의 빈집을 그냥 내어주고
가방 가득히 들고 다니던 사랑도
우리들 긴 잠 속에 놓고 오면 되겠지.
- 마종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