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崇禮
숭례문이 국보라면
예는 國本 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는 인간관계의 질서이다.
불에 타면서
恥部는 드러나고
전파는 여과 없이 세계로 퍼졌다.
지켜내지 못한 것도 부끄럽지만
불을 끈다고 운집한 사람
불을 끈다고 동원된 고급 장비
카메라들 그들의 코 바로 앞에서
현판이 떨어져 동댕이 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한것도 부끄럽기 짝이없다.
생각하는 사람들 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많은 사람들중 한 사람의 지휘자도
현판을 챙기려 나서지 않았다.
문화의 껍데기라서 그런가
문화의 알맹이는 무엇인가?
삼성가의 미술작품 한개의 가치만도
못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는 사고 팔고 하는 물건이 아니기에
더욱 소중한것이다.
집안 제사에는 오지 않아도
딴따라의 춤판에는 운집하는 사람들이다.
행동보다 말은 작야야 함을
최고의 가치로 살았던 선비들이
어느사이
작은 말은 귀 기울이지 않고
큰 소리만 좇는 망가지는 나라
포장된 선비가 이 나라 안에 얼마이던가
새소리
개소리처럼
허비되는 말은 잔소리
그러므로 크게 하여야 되는 소리는
영역을 다투는 짐승소리처럼 연구대상이다.
소리는 말이 될수 없다
이제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몸은 과학의 범주이고
마음은 도덕의 범주이다.
발명을 위해 연구 하는 연구소는 보았지만
도덕을 위해 세운 연구소는 보지 못했다.
학교는 영어교육의 광풍에 흔들려
인성을 키우는 교육연구는 없는거 아닌지
灑掃應對 進退之節
誠心 正意...
집중력을 키우는 교육 연구소가 있긴 하는가
종교는 졸음을 쫓지 못하고
깨우침은 멀다.
마음을 닦으려 교회로 절간으로
시주한 돈은
부처와 하늘의 것이 아니라
구도의 복지는 없고
배 부른자들의 道는 멀어지고
이끄는자는 게으르고 , 사치의 크기는 도덕과 반비례 한다.
돈을 버는자는 짐차를 타고
돈을 먹는자는 에쿠스를 타야 폼이 나는 나라에
자라는 꿈 나무들이 무엇을 보고 커 겠는가
제대로 가는 곳은 보기 힘들고
스켄들과
큰 소리는 T.V마다 시끄럽다
감성의 자극은 아편처럼 퍼져가고
메스컴은 오염 과의 동업자들이다.
사소한 일상에 목숨 걸 일 없다고
사소한 일상이 세상을 멍들게 하는 것을 용인해야 하는가
종교 , 정치 , 학교는 공공의 상징이다.
그래서 당연한건지 모르겠지만
말도 탈도 거기에서 더 많다.
근본 정신은
옮겨심는 나무처럼
재단하고 가꾸어 놓고 보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옮겨심듯
남의 문화는 가까이두어 길 들려야하고
보이지 않는 본래의 정신은 먼곳에 잠들어 있다.
본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진 못하지만
아름다운 풍습과 사람에게 주는 교훈이 있는 것이요
본래의 禮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못 한다.
[敎訓正俗非禮不成]
숭례문은 불탄 것이 아니라
몽매한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카메라의 촛점을 모이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功遂身退의 道를 보여 준 것이다.
"길은 돌아오기위해 나지만
인생은 퇴로가 없다 " 했다.
禮는 인생의 동반자요
禮의 門은 다른문화와의 경계를 가르는 문이 아니라
자존의 힘과 질서를 위해서 서 있어야 하는 문이다.
080212 / 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