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른바 주흥사의 [천자문]을 얻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천자문]은 字學에 관한 책이 아니다.
天地라는 두 글자를 배워놓고
日月 , 星辰 , 山川 , 丘陵 같이 연결 되는 글자를 다 배우지 않았는데
갑자기 내 버려두고
"잠시 네가 배우던 것을 그만두고 오색을 배워라" 라고 한다
그래서 玄黃이라는 글자를 배운다
그러면 靑赤 , 黑白 , 紅紫 , 緇綠의 차이를 구별 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그치게 하고
"잠시 네가 배우던 것을 놓아두고 우주를 배워라 " 라고 한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방법이란 말인가?
雲騰致雨라 하여 雲雨의 사이에 騰致를 끼워넣어니
그 종류를 능히 다 할수 잇겠는가?
露結爲箱이라 하여 露箱의 사이에 結爲를 집어 넣으니
그 차이를 능히 구별할 수 있겠는가?
찰 盈의 반대는 빌 虛요
기울 仄의 반대는 평평할 平이다
그런데 [천자문]에서는 日月盈仄이라 하여 盈 자를 仄 자와 짝 지었다
이것은 세로를 말하다가 가로에 견주는 격이니 그 비슷한 종류가 아니다
해 歲자는 때 時 자와 무리가 되고 陽은 陰과 짝이 된다
그런데 閏餘成歲라 하고 律呂調陽 이라고 따로 말하여 홀로가고 동떨어져 있게하니
그 종류가 아닌 것이다
대저 문자는 무릇 문자를 배울때는 맑을 淸자로 흐릴 濁자를 일 깨우고
가까울 近자로 멀 遠자를 깨우치며
가벼울 經으로 무거울 重자를 가르치고
얕을 淺으로 깊을 深을 알게 해야 한다
짝지어 들어서 함께 펼쳐 보여주면 두 가지 뜻을 다 통하게된다
반대로 하나만 말하거나 치우쳐서 얘기하면 두 가지 뜻이 함께 막혀서
아주 똑똑한 경우가 아니고는 능히 깨우칠 수가 없다
또 무릇 형체가 있는 사물과
형체가 없는 情은 그 종류가 다르다
행위가 없는 情과
행위가 있는 事도 그 종류가 같지 않다
江 , 河 , 土 , 石 은 形의 이름이다
淸 , 濁 , 雅 , 俗은 情에 해당된다
물고일 渟과 흐를 流 , 떨어질 隕과 솟을 突은 事에 해당된다
그 종류를 가지고 잇대지 않고서는 능히 곁으로 통하게 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그때그때 뒤죽 박죽 네 글자씩 엮어
韻字에 맞춰 배열한 결과
[천자문]은 전혀 계통없고 체계도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천자문]은 梁나라 武帝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周興嗣에게
하룻 밤 안에 천자문을 지어 바치면 사면해 주겠노라 해서
그가 하룻밤 안에 지었다는 책이다
이 책을 완성하고는 노심초사 끝에 갑자기 머리가 세었다 해서
"白首文" 으로도 불린다.
{ 다산 선생의 천자문 評 / 정민 교수의 저서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