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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身正心

교육을 보는 고전의 시각

敎學의 기록이란 뜻이다

程子가 말 하기를 [ 禮記에서 大學 과 中庸을 제외 하고는

오직 學記 와 樂記만이 道에 가깝다] 라고 했다.

 

 

스스로 배우지 않고서도 思慮가 드러나고 도리에 맞는 경우도 있다.

또 선량한 士를 가까이하여 구할 수도 있는데

이는 작은 명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뭇 사람을 감동 시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또 어진이를 좇고 廣遠한 재능이 있는 사람과 친히 사귀어 자기의 智德을 연마하는

자는 뭇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足하지만 만 백성을 감화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만약 만민을 감화시키고 좋은 풍속을 이룩하려 한다면 반드시

학문에 의해야 할 것이다.

 

 

玉不琢不成器[옥불탁불성기]

人不學不知道[인불학부지도]

그러므로 옛날의 왕은 나라를 세우고 그 백성의 임금이 될 때는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先務로 삼았다.

兌命에 이르기를 [終始思念을 언제나 학문에 두고 이로써 만민을 교화 시키려 한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수유가효불식부지기지야[雖有嘉弗弗食不知其旨也]

수유지도불학부지기선야[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

따라서 배우고 나서야 자기의 지덕이 모자람을 알게 되는 것이며

가르치고 나서야 자기가 아직 자기의 지덕이 미숙하여 困苦를 겪는다는 것을 안다.

자기의 지덕이 모자람을 알고 나서야 능히 스스로 반성하여 면학하게 되고

곤고한 것을 알고 나서야 늘히 힘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 하기를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함께 지덕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兌命에 이르기를 [가르치는 것은 半은 자기가 배우는 것과 같다] 하였다.

 

 

해 마다 학생을 입학시키고

격년으로 그 그 학예의 진전 여부를 시험하고

다시 1 년만에 시험하여 경서의 장구를 나누어 그 뜻을 밝히고

그 지향하는 바의 正邪를 변별하는 정도를 본다.

3 년 만에 또 시험하여 그 학문을 경애하여 힘쓰는가

친구를 사귀어서 서로 화락 하는가를 보고

5 년만에 시험하여 널리 諸學을 강습하고 그 스승을 친애 하는지의 여부를 보며

7 년만에 시험하여 학문의 깊은 뜻을 강구하여 시비를 논설하고 친구를 취함에 있어

반드시 방정한 자를 가리는지의 여부를 보는데

이런 것들을 학문의 小成 이라고한다.

9 년만에 시험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를 잘 알아 통달하고

한편 뛰어나게 자립하는 행실이 있어서 외물의 유혹을 받을지라도 조금도 도에

어긋나서 유혹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데 이것을 학문의 大成 이라한다.

 

대체로 이렇게 한 후에야 만민을 감화하여 그 좋지 못한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자들은 悅服하고

먼 나라 사람들은 사모하여 따라온다.

이것이 대학에서 사람을 가르친 효과인 것이다.

예날의 기록에 이르기를

[개미새끼는 흙을 운반하는 법을 배워서 큰 蟻塚(의총)을 이룬다.] 하였다.

 

 

대학에서 첫 입학자를 가르칠 때는

1 학생으로 하여금 道藝를 존경하도록 모범을 보인다.

2 鹿鳴 . 四牡 . 皇皇者華의 3편을 노래하는것은 학교생활의 시초에 있어

  벼슬에 나아가 그 직무를 받는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서다.

3 북을쳐서 시작을 알린뒤 행담을 열어 책을 꺼내도록 함은

  그 학업에 순종 하도록 함이다.

4 夏楚의 두 회초리는 그 게으름을 경계하고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다.

5 왕은 諦祭를 정하기전에는 대학을 시찰 하지 않는다

  이는 학생의 마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도록 만들고 나서

  학문에 종사 토록 함이다.

6 선생이 때때로 학생의 아는 바를 관찰 하고도 일일이 알려서 말 해주지 않는것은

  학생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뜻하는 바의 학업에 돌려 발분 노력해서

  스스로 진리를 터득 하기 위해서다.

7 幼年자는 강의를 들을 뿐이고 선생이 질문하지 않음은 자기의 실력을 껑충 뛰어 넘어

  조급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함이다

이 7 가지는 대학의 가르침의 大本이다

이르기를

무릇 배우는 자로서 [이미 벼슬길에 나간자는 자기가 종사하는 직무에 필요한 것을

먼저 배우고]

[아직 벼슬 길에 나가지 않는 자는 그 지향하는 바를 먼저 배운다]라고 했다.

 

 

대학의 교육은 사철에 다라 바른 학업이 있는데

봄 . 가을 에는 예악을 가르치고

여름 . 겨울에는 詩書를 가르치고

봄에 독송하고 여름에 弦歌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물러가서 휴식 할때는 반드시 燕居의 學이 있다.

즉 한가할때 금이나 슬을 잡아 그것을 탄주하는 것을 배워 익숙해지지 못하면

손이 악기에 안주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휴식 할때 널리 사물의 情理의 依附하는 바를 연구하여 그 實을 시험하는 일이 없을때에는

시를 풀어 응용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러나서 여러가지 잡다한 복제를 직접보고 그 만드는 법을 연구 하거나 배우지 않는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禮를 해석하고 응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말 했듯이 물러나 한가하게 쉴때 이산의 세 가지 藝를 興起시켜 힘쓰지 않으면

학교에서 이를 즐겨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학문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 마음에 간직하고 닦으며 그 근원을 養息하고

그 藝에 優游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 배움에 안거하여 그 스승을 친하게 되고 그 벗과 切磋함을

즐기게 되어 道에 신의가 있으므로 비록 스승과 학우를 떠난다 해도 어긋 남이 없는 것이다

兌命에 이르기를

[공경하여 유순하게 학문에 힘써 언제나 민첩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때는 그 수양 진보의

신속함이 마치 샘물이 분출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라고했다

 

 

오늘 날의 교육자는 부질없이 책을 읽어 그 글을 외우게 할 뿐 그 깊은 뜻을

연구하지 않고 공연히 질문만 퍼붓고 그들을 啓發하지 못하며

쓸데 없이 말만 많을 뿐이다 . 서둘러서 앞으로 나아가려 할뿐

그 학업을 안락하게 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학생들로 하여금 성심을 다하게 하지 못하고

가르쳐도 그 재능을 다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생이 교육을 실시해도 도리에 어긋나고 학생이 스승에게 구하는 바도 역시

도리에 어긋난다. 그리하여 그 학문이 幽隱하여 밝지 못하므로 그 스승을 미워하고

그 학문을 닦기 어려워하여 그 이익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학업을 끝마치면 곧 이것을 버리니 오늘날의 교육에 아무 성과가 없음은 이 때문이다.

 

**** 옛 사람의 탄식이 어찌하여 지금의 탄식과 매우 같다 ****

 

 

대학의 교수법에는

학생의 악습이 발생하지 않았을때 금지하는 [ 豫法 ]

학생이 스스로 발분하여 알기를 구할 때에

즈음하여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 時法 ]

학생의 智力정도를 넘지 않게 교육을 실시하는 [ 孫法 ]

서로 학우의 언행을 관찰하여 그 善을 따르며 惡을

물리치게 하는  [ 摩法 ] 이 있는데 이 네가지가 교육이 興隆하는 근본이다

 

 

1 학생의 악습이 이미 발한 후에 금지 할때는

   惡慾이 堅强하여 가르침이 이를 이겨 내지 못하며

 

2 때가 지난후에 배울때는 긴장이 풀려서 학문이 달성되기 어렵다.

 

3 또 정도를 생각지 않고 유년과 소년을 잡다하게 섞이게 하고서

   교육을 실시하여 순조롭지 않을 때는

   孤陋(고루) 또는 寡聞하게되어 진보를 바랄 수 없게 되며

 

4 더럽고 부정한 벗을 사귈때는 스승의 길에 거슬리게 되며

5 褻(더러울 :설)私의 譬(비유할 :비)話를 즐길 때는 그 학문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교육을 망치는 근본이다

 

 

군자는 마땅히 교육의 興의 근본을 알고

교육의 폐의 근본을 안 후에 남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군자가 남을 敎喩(깨우쳐 :유)할때는 급히 이끌지 않고

 

학생으로서 지력이 있는 자는 발분하기를 기다려

이를 격려 할 뿐 누르지 않으며

그 마음의 단서 . 대의를 열어줄 뿐 통달하게 하지 않는다.

 

급하게 이끌지 않는다면 곧 마음이 和樂하여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고

지력이 있는 학생은 그 발분을 기다려서 격려하고 이를 억누르지 않는다면

곧 학문을 즐거워하고 쉽게 여겨 힘쓸 것이며

 

또 그 단서 . 대의를 열어주고 학생으로 하여금 전체 또는 지엽에 대해

통달 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학생이 학문을 즐거워하고 쉽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올바른

敎喩라고 할 것이다.

 

배우는 자에게는 네가지 허물이 있는데

1 듣고 보는 것이 너무 많아 돌아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흠

2 듣고 보는 일이 너무 적어 일반적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흠

3 너무 쉽다고 속단하여 이를 얕보고 너무 高遠하게 치닫는 흠

4 지혜가 얕아 미치지 못하겠다고 학문을 중지 하는 흠

이 네가지의 것은 마음이 같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고 난 후에야 능히 그 흠을 구할것이다.

가르치는자는 그 善을 늘여서 그 失을 구해주는 것이다.

 

善歌者는 使人繼其聲하고[노래잘 하는 자는 목소리와 가락을 후세에 잇게하고]

善敎者는 使人繼其志하라[잘 기르치는 자는 그뜻을 잇게하여 만대에 남게한다]

 

학문에 이르는데는 쉽고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알고

좋고 싫음을 안 후에야 능히 넓게 깨우치는 것이다.

넓게 깨우친 후에야 비로소 스승이 될수 있는 것이고

스승이 된 후에야 비로소 한 벼슬의 우두머리가 될수 있는 것이며

그 長이 될수 있는 후에야 비로소 君이 될수 있는것이다.

따라서 스승이란 君이 됨을 배워주는 자이다.

 

이 때문에 스승을 택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릇 학문의 길은 어떻게 스승을 존경하느냐에 어려운 점이 있다

스승이 존경 되어야 비로소 그 道가 존귀하고

그 도가 존귀해야만 비로소 백성이 학문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이다.

 

1 잘 배우는자는 가르치기가 쉽고 그 공을 스승에게 돌린다

2 잘 배우지 않는자는 스승이 가르침에 매우 수고해도 그 공이 半에 불과할 뿐아니라

   도리어 스승을 원망 한다

3 잘 묻는자는 단단한 나무를 다스리는자가 쉬운곳을 먼저하고

   뒤에 절목하여 자연히 풀리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물으므로 자연히 알게되어

   지덕이 크게 진보 하는 것이다.

4 잘 묻지 않는자는 이와는 반대가 된다

 

군자가 말 하기를

大德不官 하고 [불관  : 어떤 직책을 맡겨도 다 잘 처리한다]

大道不器 라    [불기  : 어디에다 실시 해도 모두 타당하다 ]

大信不約 하고 [큰 믿음은 언약이 없다 ]

大時不齊 라    [천시는 일정치 않다 ]

라고 했다 . 이 네가지를 관찰하여 사물의 근본에 뜻 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三王之祭川也[삼왕지제천야] 우 . 탕 . 무왕이 百川의 신을 제사지낼 때

皆先河而後海[개선하이후해] 먼저 河神을 제사지낸 후에 海神을 제사 지냈다.

或源也[혹원야] 강하는 원천이고

或委也[혹위야] 바다는 강물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此之謂務本[차지위무본] 이처럼 근원을 먼저 하는 것을 務本이라 한다.

 

 

務本은 本立而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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